요즘 레슨을 받으며 느끼는 것이 있다.
레슨을 받으면
불과 이십분만에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이 차다.
근데 이것을 혼자서 이렇게 해보려고 하면 절대 이런강도가 나오지 않는다.
너무 힘들면 그만해 버리기 때문이다.
PT도 마찬가지
PT할때는 운동도 잘되고 근육붙는게 눈에 보인다.
하지만 PT가 끝나고 혼자 헬스장을 다녀보면
그 근육들은 금방 풀어져 버린다.
한번씩 빠지기도 하고
음식 조절에도 실패하기 때문에
돈을 내고 레슨/PT을 받으면
내가 지불한 돈의 가치때문에
빠뜨리지 않고 하게 되고
강사가 극한으로 잘 이끌어 준다.
이는
돈으로 강사의 시간을 사서 나의 시간을 save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나약한 의지를 돈으로 사는 것이다.
매일 운동 하는게 힘들다면
적지않은 돈을 지불하고 운동을 해보자
의지가 충만해질테니까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2012년 6월 29일 금요일
반장의 트라우마
초등학교 3-4학년 때였던 것 같다. 공부를 좀 한다는 이유로 반장에 선출되었다.(완전 시골 학교)
그때 담임은 새로 부임온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이름도 아직 기억이 난다. 기억력이 별로인 나에게 이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일이다.
당시만해도 난 나서기 좋아하고 재미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림을 보고 무엇을 하는 그림인지 상상해서 얘기하는 그런 게 있으면, 난 재미난 얘기 꺼리를 만들어서 제일 먼서 손을 들었다. 그런식으로 뭔가 재미난 방향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나였는데, 반장을 하고 나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자선생님이고 처음 부임 오신분이라 노하우가 없으셔서 선생님 말이 잘 먹히지 않았었고 그런 이유로 선생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던 것 같다.
어느 날 부턴가. 선생님은 나에게 회초리를 주면서 떠드는 애들을 때리라고 지시를 하셨다. 대신 애들이 떠들면 네가 맞는다는 말과 함께..
처음에는 차마 친구들을 회초리로 때린다는 것을 하지 못해 내가 맞았고
내가 맞아보니 아파서 친구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근데 그게 할짓이 못 되었다.
그런 고문이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충격이 좀 컸나 보다.
난 이때부터 대중으로 들어가 그들과 같은 색깔을 내며 튀는것을 싫어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게 나쁜 것 안좋은것으로 까지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아이덴티티는 그렇게 상실 되어버렸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 담임은 새로 부임온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이름도 아직 기억이 난다. 기억력이 별로인 나에게 이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일이다.
당시만해도 난 나서기 좋아하고 재미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림을 보고 무엇을 하는 그림인지 상상해서 얘기하는 그런 게 있으면, 난 재미난 얘기 꺼리를 만들어서 제일 먼서 손을 들었다. 그런식으로 뭔가 재미난 방향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나였는데, 반장을 하고 나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자선생님이고 처음 부임 오신분이라 노하우가 없으셔서 선생님 말이 잘 먹히지 않았었고 그런 이유로 선생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던 것 같다.
어느 날 부턴가. 선생님은 나에게 회초리를 주면서 떠드는 애들을 때리라고 지시를 하셨다. 대신 애들이 떠들면 네가 맞는다는 말과 함께..
처음에는 차마 친구들을 회초리로 때린다는 것을 하지 못해 내가 맞았고
내가 맞아보니 아파서 친구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근데 그게 할짓이 못 되었다.
그런 고문이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충격이 좀 컸나 보다.
난 이때부터 대중으로 들어가 그들과 같은 색깔을 내며 튀는것을 싫어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게 나쁜 것 안좋은것으로 까지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아이덴티티는 그렇게 상실 되어버렸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2012년 4월 5일 목요일
EclipseCON 2012
3월 말에 5일정도를 reston, Virginia에서 열리는 Eclipsecon 2012 에 다녀왔다.
이것은 이번 출장에 대한 결산이라고나 할까.
1. 여유.
엘리베이터를 탈때나, 문을 열고 닫을때 100% 외국인들이 내게 먼저 양보를 했다. 난 한국에서의 행동이 배어 있어서 적절한 타이밍으로 비켜나오는 정도인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여유가 있었다. 또 적당한 유머까지.
분명 우리가 배울 점이다.
2. Open
바야흐로 오픈소스는 대세가 되었다.
좋은 개발자가 되려면 유명한 오픈 소스의 commiter 임을 증명하면 된다. 세계가 인정해주니까.
특히 많은 독일 애들(Jubula, xtext ...)이 눈에 띈다. 독일애들은 영어도 잘하네. --;;
3.출장 모랄.
회사는 이번 출장으로 나에게 돈을 얼마나 투자했는가.
비행기 250, registration fee150, 호텔 100, 차렌트 50, 출장여비 50
600이다.
객관적으로 가등급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내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내가 전해들은 것들을 잘 전달하자.
내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내가 전해들은 것들을 잘 전달하자.
4. Neverlost
처음 렌트를 해서 차를 몰아봤다. 걱정을 좀 했었는데 neverlost덕분에 잘 돌아다녔다.
점과 선으로 표시되는 네비인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이 조그만놈에 미국 전체지도를 구겨 넣을려면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울 나라 네비는 오버인지도 모르겠다. roi가 낮다. 점과선으로 빠릿빠릿하게 만들어서 가격으로 승부하면 가망성이 없나?
2012년 3월 24일 토요일
interview - 2012
오늘 interview 후기.
오늘 결론적으로 내가 범한 실수는 어떤 절실함을 어필하지 못했고, 스펙 채우기 식의 칸 채우기로 인한 마이너스 효과를 봤다. 안적어도 되는것인데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
말문이 막혔던 질문들
1. 게임이 그렇게 좋았고 기술도 있었는데 방과후 프로젝트로 다른것을 해보지 않았나요?
2. 세분중(다 아는 사람들) 한분을 뽑아야 한다면 누굴 뽑아야 할까요?
3. 제안한 게임을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a1, 사실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는데, 그게 티가 나버린 질문. ㅋ
a2, 별달리 답을 할게 없어서 침묵.
a3. 아뇨라고 답했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하다 보니 횡설수설이 되어 버렸다. ㅋ
교훈, fake는 통하지 않는다. 진실만을 말하자.
오늘 결론적으로 내가 범한 실수는 어떤 절실함을 어필하지 못했고, 스펙 채우기 식의 칸 채우기로 인한 마이너스 효과를 봤다. 안적어도 되는것인데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
말문이 막혔던 질문들
1. 게임이 그렇게 좋았고 기술도 있었는데 방과후 프로젝트로 다른것을 해보지 않았나요?
2. 세분중(다 아는 사람들) 한분을 뽑아야 한다면 누굴 뽑아야 할까요?
3. 제안한 게임을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a1, 사실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는데, 그게 티가 나버린 질문. ㅋ
a2, 별달리 답을 할게 없어서 침묵.
a3. 아뇨라고 답했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하다 보니 횡설수설이 되어 버렸다. ㅋ
교훈, fake는 통하지 않는다. 진실만을 말하자.
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생각하는 힘
레미가 레고를 하고있다. 처음으로 혼자서 레고를 조립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R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막히거나/틀렸다 싶으면 R이 참견한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R에게 얘기한다.
R! 네가 레미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은 알지만,
레미가 고민하고 틀려볼 수 있는 기회를 뺐는것은 너무 큰 참견 같아.
그냥 보고만 있어봐봐..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어려운 수학문제로 끙끙 앓고 있다. 여느 문제집처럼 답은 책의 끝쪽에 있다.
답안지를 볼 수도 있고
좀 더 생각을 해볼 수 도 있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맘은 조급하고 그러다 결국 답안지를 선택한다.
문제를 푸는게 아니고 패턴을 외우는 암기과목 같다.
그 부작용으로 내 사고의 깊이 혹은 인내심은 조금더 깊어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 던것 같다.
먼 옛날 미분 적분을 연구한 수학자들은 1600년대 사람들이다.
그 당시에 발견된 공식을 우리는 아직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그 당시 수학자들은 무엇을 토대로 그런 발견들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생각하는 힘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가면 수학이 참 쉽다고들 한다.
미적분도 못하는 대학생들 보면 얘네가 어떻게 이런 좋은 학교에 입학을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고들 한다.
수학에 과한 focus가 달랐던 것인데, 우리는 패턴에 그들은 원리/개념에.
지금은 우위로 보이는 것들이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확률이 크다.
우리가 실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이전에는 풀어 본적이 없는 문제들이 더 많으니까.
남들이 풀어봤던 문제에 많은 보상을 해줄 기업/조직은 없다.
그래서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
R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막히거나/틀렸다 싶으면 R이 참견한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R에게 얘기한다.
R! 네가 레미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은 알지만,
레미가 고민하고 틀려볼 수 있는 기회를 뺐는것은 너무 큰 참견 같아.
그냥 보고만 있어봐봐..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어려운 수학문제로 끙끙 앓고 있다. 여느 문제집처럼 답은 책의 끝쪽에 있다.
답안지를 볼 수도 있고
좀 더 생각을 해볼 수 도 있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맘은 조급하고 그러다 결국 답안지를 선택한다.
문제를 푸는게 아니고 패턴을 외우는 암기과목 같다.
그 부작용으로 내 사고의 깊이 혹은 인내심은 조금더 깊어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 던것 같다.
먼 옛날 미분 적분을 연구한 수학자들은 1600년대 사람들이다.
그 당시에 발견된 공식을 우리는 아직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그 당시 수학자들은 무엇을 토대로 그런 발견들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생각하는 힘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가면 수학이 참 쉽다고들 한다.
미적분도 못하는 대학생들 보면 얘네가 어떻게 이런 좋은 학교에 입학을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고들 한다.
수학에 과한 focus가 달랐던 것인데, 우리는 패턴에 그들은 원리/개념에.
지금은 우위로 보이는 것들이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확률이 크다.
우리가 실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이전에는 풀어 본적이 없는 문제들이 더 많으니까.
남들이 풀어봤던 문제에 많은 보상을 해줄 기업/조직은 없다.
그래서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
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luck can be created
운(luck) 이라는 것은 참 절묘한 단어인데
하늘에서 주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사실!
운이별로 없는 사람들은 확실한 것만 찾고 불확실한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데 비해,
운좋은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에 자신을 더 많이 노출시킨다고 한다.
즉, 운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만들어 주는것이 요지이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는 모두 대학을 중퇴했다.
잡스가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 컴퓨터를 만들지 않았다면
게이츠가 하버드를 중퇴하고 Microsoft를 만들지 않았다면
주커버그가 재미로 만든 Facemash로 하버드를 관두지 않았다면
그들을 럭키가이라고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또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병특을 구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 좋은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럭키가이의 비밀은 의외로 단순했던 것이다.
실패가 걱정된다고?
비록 몇번 실패하더라도 많은 것을 배운 후 일테니.
어쨋든 당신에게 이익일 것이라 믿의 의심치 않음.
하늘에서 주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사실!
운이별로 없는 사람들은 확실한 것만 찾고 불확실한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데 비해,
운좋은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에 자신을 더 많이 노출시킨다고 한다.
즉, 운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만들어 주는것이 요지이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는 모두 대학을 중퇴했다.
잡스가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 컴퓨터를 만들지 않았다면
게이츠가 하버드를 중퇴하고 Microsoft를 만들지 않았다면
주커버그가 재미로 만든 Facemash로 하버드를 관두지 않았다면
그들을 럭키가이라고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또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병특을 구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 좋은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럭키가이의 비밀은 의외로 단순했던 것이다.
실패가 걱정된다고?
비록 몇번 실패하더라도 많은 것을 배운 후 일테니.
어쨋든 당신에게 이익일 것이라 믿의 의심치 않음.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커피전문점과 핸드폰대리점의 공통점
유독 우리나라는 유행과 쏠림의 치우침이 심하다. 스마트폰이 인기를 좀 얻는가 싶더니 요즘 팔려나가는 핸드폰중 절반이 스마트폰이라 하고, 부동산도 그랬고 ... 유행이 순식간에 퍼지는 나라다. 땅이 좁아 사람들이 몰려 살다보니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특종업종이 잘된다 싶으면 비슷한 업종이 유행처럼 생겨나는 경향이 있다. 부동산 광풍이 불때를 생각해보면, 부동산 중개사무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때가 몇년전인데. 그 많던 가게들은 지금 파리를 날리며 차츰 정리가 되는 추세다.
요즘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것이 몇 있다.
- 커피 전문점
- 핸드폰 대리점
요즘 새로 생기는 가게는 대부분 저 둘중 하나다.
집근처에 있는 신축아파트 상가에 핸드폰 가게만 4개가 들어섰다.
회사근처의 상가에 있는 커피전문점은 어림잡아 10곳, 회사안에 있는 5곳과 합치면 15곳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모두다 사람들이 꽉차있다.
그들중 대부분은 '요즘 이게 잘된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오픈했을터.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1-2년 내에 그들의 미래는 너무나 뻔하다.
그래서 특종업종이 잘된다 싶으면 비슷한 업종이 유행처럼 생겨나는 경향이 있다. 부동산 광풍이 불때를 생각해보면, 부동산 중개사무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때가 몇년전인데. 그 많던 가게들은 지금 파리를 날리며 차츰 정리가 되는 추세다.
요즘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것이 몇 있다.
- 커피 전문점
- 핸드폰 대리점
요즘 새로 생기는 가게는 대부분 저 둘중 하나다.
집근처에 있는 신축아파트 상가에 핸드폰 가게만 4개가 들어섰다.
회사근처의 상가에 있는 커피전문점은 어림잡아 10곳, 회사안에 있는 5곳과 합치면 15곳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모두다 사람들이 꽉차있다.
그들중 대부분은 '요즘 이게 잘된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오픈했을터.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1-2년 내에 그들의 미래는 너무나 뻔하다.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Finding Why
자기 인생에서 자기기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 나이에도 아직 이런 고민을 하는 걸 보면 ...
왜 내가 이길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과거를 돌아보면 뭔가 정리가 되겠지.
컴을 처음 본건 초등학교때 친구를 따라 간 컴퓨터 학원이었다.
컴퓨터를 보자 머리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마치 자신의 이상형을 소개팅에서 만날때 들리는 그 종소리.
화려한 화면과 키보드에 즉각 반응하는 그 무엇에 나는 강하게 끌렸고,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결정하게 된다.
하여 어떤 학원도 다니지 않았던 나는
처음으로 부모를 졸라서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된다.
그때배웠던 것은 줄의 맨앞에 숫자를 써야하고
goto문을 사용해 분기해야만 했던 Basic 언어.
프로그래밍에 소질이 있음을 알았다.
중학교때 아버지를 졸라 IBM 286 XP컴퓨터를 사게 된다.
(그땐 빌 게이츠를 몰랐지만)게이츠 처럼 뭔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낼 줄 알았지만
그런 기적은 없었다.
그 시대에 시골에서 컴퓨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주로 노턴유틸리티, Basic, 오락이 다였다.
중학교 3학년 진로 선택기간.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는데 컴퓨터가 하고 싶었기에
실업계와 인문계 고등학교 사이에서 무지하게 고민을 했다.
선생님은 펄쩍 뛰시고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결국엔 안전을 택했다.
이때 상고를 갔었다면 대박과 쪽박 둘중 하나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3년간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컴퓨터와는 아무런 접촉을 하지 못했다.
3년간 공부만 열심히 했지만 효율적이진 못했다. 성실함이 무기였던 시절.
서울 소재의 대학에 입학.
꿈에 그리던 컴퓨터 동아리를 들어가게 된다.
이때 본격적인 C 프로그래밍을 선배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주로 Turbo C로 수업.
선배들 수준은 높아서 회사와 학교를 병행했다.
선배들은 나의 롤모델이 되어주었고, 열심히 따랐다.
2학년이 되니 나에게 할술부장이라는 딱지를 달아 주었다.
2번의 전시회도 잘 치뤘고 힘든 만큼 배운것도 많았다.
2학년 여름방학.
친구/선후배와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웹에서 할 수 있는 여러 보드 게임들을 만다는 것이었다.
세균전, 타자게임, 오목, 오델로 뭐 이런 것들..
한달에 50만원 받는 조건.
5명이서 시작했던 알바는 몇몇은 중도 포기했고
3명은 끝까지 마무리를 하게 된다.
처음으로 프로그래밍으로 돈을 벌었다. 짜릿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라는 숙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휴학을 하고 고향에 내려간다.
그러던 어느날 동아리 선배에게 운명적인 전화가 왔다.
군대가는것만 길이 아니고 병역특례라는 것도 있으니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쉽에 지원을 해보라는 내용이었다.
머리도 이미 깎았고 갈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였는데 혼란스러웠다.
고민끝에 밑져야 1년 손해본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다시 상경.
추운 겨울에 홀로 동방을 지키며 멤버쉽 지원을 준비했다.
친구집에서 얹혀 지냈어서 컴퓨터와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멤버쉽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절실하게 준비한 만큼 멤버쉽에 합격.
친구집을 떠나 논현동 멤버쉽 입성.
그곳에는 다른 부류의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만의 게임엔진을 만드는 사람,
세계 마이크로 마우스대회에서 1등하는 사람,
스티커 사진 기계로 사업을 하는 사람...
많은 자극이 되었다.
휴학생이었기에 돈벌이가 필요했는데
마침 매닉스가 알바자리를 주게 된다.
알바가 마무리 되어 갈때쯤 그 회사가 병역특례 제한을 했고(하느님 맙소사)
난 주저할 틈없이 좋다며 딜을 한다.
회사에 정식 취직을 하면서 멤버쉽을 정리하고
흑석동 자취방으로 들어간다.
3년간의 특례생활
일로서 다가오는 소프트웨어는 그리 즐겁지가 않았고 힘에 부쳤다.
어떤 때는 정말 모니터만 보면 화가 날 정도로..
내가 운명이라 여겼던 소프트웨어인데 실전은 달랐다.
이 때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 길이 그길인가?
억지로 3년을 버티고 학교로 복학한다.
복학후 전액장학금도 한먼 먹고
삼성 취업을 위한 백업으로 멤버쉽에도 컴백한다.
논현동은 없어지고 강남멤버쉽이라 한다.
졸업을 하고 삼성에 입사한다.
이 나이에도 아직 이런 고민을 하는 걸 보면 ...
왜 내가 이길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과거를 돌아보면 뭔가 정리가 되겠지.
컴을 처음 본건 초등학교때 친구를 따라 간 컴퓨터 학원이었다.
컴퓨터를 보자 머리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마치 자신의 이상형을 소개팅에서 만날때 들리는 그 종소리.
화려한 화면과 키보드에 즉각 반응하는 그 무엇에 나는 강하게 끌렸고,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결정하게 된다.
하여 어떤 학원도 다니지 않았던 나는
처음으로 부모를 졸라서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된다.
그때배웠던 것은 줄의 맨앞에 숫자를 써야하고
goto문을 사용해 분기해야만 했던 Basic 언어.
프로그래밍에 소질이 있음을 알았다.
중학교때 아버지를 졸라 IBM 286 XP컴퓨터를 사게 된다.
(그땐 빌 게이츠를 몰랐지만)게이츠 처럼 뭔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낼 줄 알았지만
그런 기적은 없었다.
그 시대에 시골에서 컴퓨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주로 노턴유틸리티, Basic, 오락이 다였다.
중학교 3학년 진로 선택기간.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는데 컴퓨터가 하고 싶었기에
실업계와 인문계 고등학교 사이에서 무지하게 고민을 했다.
선생님은 펄쩍 뛰시고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결국엔 안전을 택했다.
이때 상고를 갔었다면 대박과 쪽박 둘중 하나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3년간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컴퓨터와는 아무런 접촉을 하지 못했다.
3년간 공부만 열심히 했지만 효율적이진 못했다. 성실함이 무기였던 시절.
서울 소재의 대학에 입학.
꿈에 그리던 컴퓨터 동아리를 들어가게 된다.
이때 본격적인 C 프로그래밍을 선배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주로 Turbo C로 수업.
선배들 수준은 높아서 회사와 학교를 병행했다.
선배들은 나의 롤모델이 되어주었고, 열심히 따랐다.
2학년이 되니 나에게 할술부장이라는 딱지를 달아 주었다.
2번의 전시회도 잘 치뤘고 힘든 만큼 배운것도 많았다.
2학년 여름방학.
친구/선후배와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웹에서 할 수 있는 여러 보드 게임들을 만다는 것이었다.
세균전, 타자게임, 오목, 오델로 뭐 이런 것들..
한달에 50만원 받는 조건.
5명이서 시작했던 알바는 몇몇은 중도 포기했고
3명은 끝까지 마무리를 하게 된다.
처음으로 프로그래밍으로 돈을 벌었다. 짜릿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라는 숙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휴학을 하고 고향에 내려간다.
그러던 어느날 동아리 선배에게 운명적인 전화가 왔다.
군대가는것만 길이 아니고 병역특례라는 것도 있으니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쉽에 지원을 해보라는 내용이었다.
머리도 이미 깎았고 갈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였는데 혼란스러웠다.
고민끝에 밑져야 1년 손해본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다시 상경.
추운 겨울에 홀로 동방을 지키며 멤버쉽 지원을 준비했다.
친구집에서 얹혀 지냈어서 컴퓨터와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멤버쉽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절실하게 준비한 만큼 멤버쉽에 합격.
친구집을 떠나 논현동 멤버쉽 입성.
그곳에는 다른 부류의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만의 게임엔진을 만드는 사람,
세계 마이크로 마우스대회에서 1등하는 사람,
스티커 사진 기계로 사업을 하는 사람...
많은 자극이 되었다.
휴학생이었기에 돈벌이가 필요했는데
마침 매닉스가 알바자리를 주게 된다.
알바가 마무리 되어 갈때쯤 그 회사가 병역특례 제한을 했고(하느님 맙소사)
난 주저할 틈없이 좋다며 딜을 한다.
회사에 정식 취직을 하면서 멤버쉽을 정리하고
흑석동 자취방으로 들어간다.
3년간의 특례생활
일로서 다가오는 소프트웨어는 그리 즐겁지가 않았고 힘에 부쳤다.
어떤 때는 정말 모니터만 보면 화가 날 정도로..
내가 운명이라 여겼던 소프트웨어인데 실전은 달랐다.
이 때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 길이 그길인가?
억지로 3년을 버티고 학교로 복학한다.
복학후 전액장학금도 한먼 먹고
삼성 취업을 위한 백업으로 멤버쉽에도 컴백한다.
논현동은 없어지고 강남멤버쉽이라 한다.
졸업을 하고 삼성에 입사한다.
2011년 10월 15일 토요일
transaction cost
transaction cost에게 압도당는 요즘이다.
+ 요즘 외주 관리를 하고 있는데, 이정도면 차라리 내가 하는게 더 효율적일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게 한두 번이 아니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것을 고민하고 속을 태운다. 역시나 큰 값어치를 지불하고 있는것. 누가 외주를 쉽다고 했는가?
+ 올해 들어 이사를 두번했다. 역시나 무시못할 돈을 transaction cost(복비+이상비)로 지불했다.
= 생애 첫집을 마련했다. 난 중학교를 마치자 마자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나와 살았다. 그 후로 결혼전까지 나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본적이 없다. 기숙사, 하숙, 멤버쉽 생활, 친구집, 자취집 등을 전전 하며 항상 누군가와 같이 지내야만 했다. 그런게 싫었던 것도 아니지만,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여유를 가져본적이 없다.
Remy는 다섯살. 복 받은 놈이다. 효도해라.
2011년 6월 14일 화요일
태호PD 강연
이게 웬일인가. 무한도전의 태호PD가 회사에 특강을 왔다기에 진짜 박명수 보다 못생겼는지 확인하러 갔지.
아래가 생각나는 꼭지들...
아래가 생각나는 꼭지들...
- 게스트 중심 탈피
무슨 말인고 하니 기존엔 게스트 연예인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예능이었고 그 연예인의 스케쥴에 모든 것을 맞춰야 했고, MC들은 조연에 불과했는데 이것을 MC들 중심의 예능으로 바꿈 - 출연자:카메라 비율을 1:N으로
처음에는 카메라가 2대 뿐이어서 유재석 위주로 화면에 잡힐 수 밖에 없었다. 그 2대를 N대로 바꾸기 위해 회사를 설득하는게 어려웠다. 처음에는 사설 카메라 기사를 채용해서 진행했고 이 사건때문에 짤릴뻔하기도 했다고. 결국에 N대의 카메라로 인해 유재석외에 다른 캐릭터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함. - 2교대 스텝
방송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고단하다. 일도 일이지만 가족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능 최초로 2교대 스텝을 돌리고 있다고 함. - 무한도전 달력
기존의 봉사 프로그램의 컨셉은 '네가 얼마나 불행한지 보여줘 그럼 집 지어줄께' 였다. 이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무한도전 달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 가족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무한도전 일이 제일 재미있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